glory

( 2021-05-09 10:41:25 , Hit : 918 )

gosucho.jpg (111.7 KB), Download : 0

인생 둘레길에서

고수초

아내와 함께
둘레길을 산책하다 보면
잔디로 잘 다듬어진 묫자리를 본다
아주 편안해 보인다
따라 눕고 싶어진다
이러면 안 되는데 싶다가
자주 뒤돌아서는 눈길
나도 때가 됐음인가
지상에서 받은 축복과
은혜도 갚지 못하고
이 풍진 세상
작은 봉분 하나로 우리를 챙기는 생애
먼 뻐꾸기 울음이 지나온 길을 끊는다

***********

윤동주 문학상, 정지용 문학상 등을 수상하였고
한국시인협회 회장을 역임한 바 있는
김종철 시인의 "둘레길에서"라는 시이다.
1947년 생인 시인은 2014년 7월에 67세의 나이로 타계했는데
그가 발행인으로 있었던 <시인수첩> 2014년 가을호에서 이 시를 실었으니
아마도 유작시이거나 생의 마지막 시간에 쓴 시인 듯 하다.
"작은 봉분 하나로 우리를 챙기는 생애"라는 말에서
문득 인생길을 깊게 생각한다.
취장암으로 투병 중에 시인협회 회장을 지냈고, 시집도 발간했다.
"한 줄의 시가 세상을 살립니다"
그래서 그는 마지막까지 치열하게 살았고,
결국은 작은 봉분 하나로 남은 것이 인생길임도 인식하며 살았을 것....

어제부터 "식기심한"(息機心閑)이란 말이 계속 맴돈다.
'식기'(息機), 득실을 따지는 기심(機心)은 내려놓으니
몸과 마음이 개운하다(心閑)는 뜻...
14세기의 문인 이색(李穡·1328~1396)도 '식기(息機)'라는 시에서
"이제껏 여러 해를 병 앓다 보니(病今幾年)
기심(機心) 가라앉힘이 약보다 낫네(息機勝藥餌)"라고 노래했다.
욕심을 걷어내면 몸과 마음이 개운할 것을....

인생 마지막 시간까지 치열하게 살았던 김종철 시인도
아마도 그 차원을 노래한 것일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