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이라는 사람들의 사는 재미는
떠나보낸 제자를 만나는 게 단연 으뜸이리라.
내게도 그런 제자가 있었다.
공부는 뒤쪽을 맴돌았으며,
홀어머니에 형과 누나들이 있어 늘 가난의 얼룩을 앞섶에 달고 다니던 아이였다.
졸업시키고 까맣게 잊어버렸는데 어느 날 불쑥 전화가 왔다.
저녁 약속을 하고 가만히 꼽아 보니 헤어진 지 15년쯤 흐른 것 같았다.
스물일곱 아니면 스물여덟은 되었으리라 짐작했다.
녀석이 오기까지 대여섯 시간 남았기 때문일까.
별의별 생각이 다 떠올랐다. 끝에는 못난 심사도 언뜻 이어졌다.
'취업 부탁하려는 걸까? 아니면 물건 판매, 보증?'
얼굴을 마주한 녀석은 나의 못난 걱정을 말끔히 씻어 주었다.
취업한다는 기쁨을 가장 먼저 알리고 싶었단다.
중학교도 어렵게 마치고, 고등학교는 실업계로 갈 수밖에 없었으며,
그것도 곧 그만둘 것 같은 위태위태한 시간을 엮어 간신히 졸업한 모양이었다.
다행스럽게도 기계 정비에 남다른 재능을 보인 덕에
작은 정비 업체에 취업했단다.
무척이나 반가웠다.
함께 눈물을 글썽거리고, 웃어 대기도 하면서 저녁 시간을 보냈다.
한 달 후, 녀석은 또 찾아오더니 마주 앉자마자 종이 가방을 건넸다.
“선생님, 구두 한 켤레 샀심더.”
“구두?”
“맨발로 교실을 돌아치던 제게 실내화 사 주셨잖아요.”
“내가? 기억이 없는데.”
“저는 생생하게 기억합니더. 15년 동안 벼르고 별렀던 일인기라요.
꼭 구두를 사 드리고 싶었거든요. 근데 그때 실내화보다 값지지 않은 겁니더.”
“이놈아! 돈을 아껴야지 뭐할라꼬 이런 걸 샀노.”
“걱정 마이소. 이제는 좀 살 것 같심더.”
나는 한동안 말을 잃었다.
“이제는 좀 살 것 같다.” 라는 말속에는
일찍부터 알아 버린 숱한 삶의 그늘이 담겼다.
나는 그 구두를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만 아껴 가며 신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녀석이 멈춰 선 기계 정비를 위해 안으로 들어선 순간
기계가 작동하는 바람에 숨을 거뒀다고 했다.
가슴이 눌려 숨을 쉴 수 없었다.
녀석이 떠난 뒤 더 이상 구두를 신을 수 없었다.
“이제는 좀 살 것 같심더.” 라던 말이
자꾸만 후렴구처럼 구두 뒤축에 따라붙었기 때문이다.
김일광, 동화 작가, 《좋은생각》2010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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