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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의 여자가 다 이리 잠들었을진대
동포여, 무엇이 그리 바쁘뇨
황망한 발길을 잠시 멈추시고
만주벌에 떠도는 남자현의 혼백 앞에
자유 세상 밝히는 분향을 올리시라
그때 그대는 보게 되리라
'대한여자독립원'이라 쓴
아낙의 혈서와 무명지를 보게 되리라
경북 안동 출신 남자현,
열아홉에 유생 김영주와 혼인하여
밥짓고 빨래하고 유복자나 키우다가
딱 깨친 바 있어
안동땅에 자자한
효부 열녀 쇠사슬에 찬물을 끼얹고
여필종부 오랏줄을 싹둑 끊으니
서로군정독립단 일원이 되니라
북만주벌 열두 곳에 해방의 터를 닦아
여성 개화 신천지 씨앗을 뿌리며
국경선 안과 밖을 십여성상 누비다가
난공불락, 왜세의 도마 위에
섬섬옥수 열 손가락 얹어놓고 하는 말
천지신명 듣거든 사람 세상 발원이요
탄압의 말뚝에 국적 따로 있으리까
조선여자 무명지 단칼에 내리치니
피로 받아 쓴 대한여자독립원
아직도 떠도는 아낙의 무명지
고정희 시인이 여성사 연구 세번째 시로 내놓은
"남자현의 무명지"라는 시입니다.
남자현 선생은 19세 때 김영주와 결혼 했으나
남편은 결혼 6년이 되던 해 을미사변 때 의병을 일으켜
일제에 투쟁하다가 유복자를 두고 사망했습니다.
아들 김성삼을 낳아 기르면서 한 아이의 엄마로
효부라는 소리를 들으며 평범하게 살던 남자현은
3·1 운동을 계기로 아들과 함께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에 뛰어듭니다.
그의 나이 47살 때 였습니다.
서로군정서 여성대원으로 활약하면서 독립군 기관과 농촌을 다니며
독립정신 고취와 기독교 신앙을 전파하였습니다.
특히 빼앗긴 조국을 되찾기 위해 여성의 힘이 절실함을 역설하면서
독립투사들 사이의 갈등 조정, 군자금 모집, 독립운동가 옥바라지 등
만주 지역 독립운동의 어머니로, 여자 안중근으로 불리게 됩니다.
북만주 일대에 12개의 교회를 세웠고
여성교육회도 10여개 이상을 세워 기독교 신앙 전파와 여성 계몽에 앞장 섭니다.
경향일보 논설위원 이기환은 그의 칼럼, "피묻은 적삼"에서 이렇게 전합니다.
"1933년 2월27일 오후 3시45분, 하얼빈 교외에서
거지 차림의 노파가 일제경찰에게 붙잡혔다.
속에 피 묻은 삼베 적삼을 입고 있었다. 권총과 비수, 폭탄도 나왔다.
독립투사 남자현 선생(1873~1933)이었다.
선생은 일제 괴뢰국인 만주국 1주년 기념식에 참석하는
만주국 전권대사 부토 노부요시(武藤信義)를 암살하기 위해 중국거지로 변장했던 것이다.
하지만 조선인 밀정 이종현의 밀고로 수포로 돌아갔다. 61살이었다.
선생은 혹독한 고문 속에서도 17일간이나 단식투쟁으로 버티다 순국했다.
밥을 내미는 일경에게 호통을 쳤다.
“조선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내 죽음은 끝이 아니다. 이제 시작이다.”
부적처럼 입은 ‘피 적삼’은 의병투쟁에 참전했던 남편 김영주가 전사한 1896년 입었던 옷이다...."
(이기환, "피묻은 적삼," 경향신문, 2015/08/08)
1933년 하얼빈에서 남자현 선생은 거지로 변장하고
만주국 일본대사이며 관동군 사령관인 노부요시의 암살을 시도하다가
붙잡힌 사건을 묘사한 것입니다.
60이 넘은 나이에 6개월동안 심한 고문을 받으며 옥살이를 하던 중
다시 살아나갈 길이 보이지 않자 죽기를 각오하고
보름에 걸친 옥중 단식투쟁을 하다가 세상을 떠납니다.
6개월 동안의 모진 고문과 단식으로 몸이 약해진 탓이었습니다.
세상을 떠나는 자리에서 아들에게 중국돈 248원을 건네며
나라가 독립이 되면 독립축하금으로 희사하라고 당부합니다.
너의 시대에 독립이 안되면
너의 아들에게 그 돈을 전하며 똑같은 유언을 하라는 말과 함께...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이 먹는 데 있는 것이 아니고 정신에 있다.
독립은 정신으로 이루어지느니라...
최후의 한명까지 남아 조국광복을 기필코 쟁취하라..."
마지막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납니다.
이런 고귀한 희생이 있어 광복의 축복이 주어집니다.
남자현의 일생을 추적해 <나는 조선의 총구다>를 펴낸 이상국 시인은
"왜 이토록 역사는 남자현을 지워버렸는가"라는 글을 통해 그렇게 말합니다.
"그녀의 삶이 던져주는 강렬한 메시지는
마흔이 된 나이에 문득 '아녀자'의 질곡을 벗어버리고,
죽음을 불사한 투쟁에 뛰어든 것에 있다.
저 흑백사진 속의 남자현이 그토록 뚫어지게 우리를 바라보는 이유는,
시대를 관통하는 진실을 전하려는 그녀의 의욕이 아닐까?
그녀가 죽은 이후에도 얼마나 많은 지식인들과 리더들이 변절하고 말을 바꿨던가…
그녀는 식민지의 여성으로서 가장 자기초월적인 생을 걸었다."
자신들의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 그런 숭고한 희생을 일부터 감추었다는 이야기...
중국인들의 도움으로 남자현은 하얼빈 남강외인(南崗外人)묘지에 안장되었지만
그곳이 신도시로 개발되면서 문화공원으로 이장했고,
그곳이 유원지로 개발되면서 지금은 그의 무덤을 찾을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그렇게 독립이 되었고, 이제는 선진국에도 들어가 잘 사는 나라가 되었지만
이런 숭고한 독립지사의 묘 하나 챙기지 못하는 우리가 부끄럽습니다.
국립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남자현의 묘가 있지만 빈무덤입니다.
이기환은 계속해서 전합니다.
"남편을 잃고 47살의 나이에 만주로 떠난 남자현 선생은 ‘독립군의 어머니’였다.
조소앙이 쓴 <여협 남자현전>은 “1925년 남자현 선생이
단원 4명을 이끌고 사이토 마코토(齋藤實) 총독의 암살미수사건을 주도했다가
실패한 뒤 가까스로 탈출했다”고 소개했다.
선생의 ‘단지(斷指) 혈서 투쟁’은 유명하다.
1920년대 만주 독립운동단체의 통합운동이 부진하자 선생은 분연히 일어나 혈서를 쓴다.
'선생이 손가락을 베어 그 피로 글을 써서 책임자들을 소집했다.
간부들 모두 그 뜨거운 눈물과 죽음을 각오한 피의 설유에 잘못을 회개하고….'
(‘독립운동의 홍일점-여걸 남자현’, ‘부흥’-1948년 12월호)
그뿐 아니었다. 1932년 일제가 괴뢰국인 만주국을 세우자
국제연맹은 하얼빈에 조사단을 파견했다.
선생은 또 한번 좌우 손가락을 끊어 ‘朝鮮獨立願(조선독립을 원한다)’는 혈서를 써서
조사단에 보내려 했다. 그러나 삼엄한 경비 속에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대한 독립 70주년...
누구의 여동생은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골빈 소릴 해대고
자기 출세를 위해
일본 천황에게 목숨을 바치겠다고 충성을 맹세하고
하이에나와 같이 눈을 번득이며
이런 독립투사들을 잡아 가두던 사람들이
오늘도 여전히 권좌에 앉아 득세하는 나라...
군대를 안 가려고 일본의 귀화한 한 재벌은
대한민국 정부의 비호를 받으며
한국에서 돈을 벌어 일본을 살찌우면서
부끄러운 집안 싸움을 통해 그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나라...
더 부끄러운 것은
그들이 지키려는 나라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이렇게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의
이름조차 기억 못하고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8월 23일까지 서울 서대문 옛 형무소에
남자현 선생을 포함해 266명의 여성독립운동가 특별전이 열리고 있답니다.
황망한 발길 잠시 멈추고 어떻게 광복이 주어졌는지 잊지 말라고...
주말엔 시간 내서 영화 '암살'도 보고
서대문에도 가보자고 했더니
'아빠 당장 갑시다...' 답하는 아들이 고맙습니다.
이중국적자이니 적당히 피해갈 수도 있으련만
스스로 미국에서의 학업 중단하고 군복무를 위해 귀국한 아들...
내일은 함께 그곳에 가봐야 겠습니다.
그렇게라도 해야 덜 부끄러울 것 같아서...
조국 광복 70주년이 다가오는 때
남자현 선생을 깊이 깊이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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